그들이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 신경정신과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프리다 칼로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자신의 모습을 소재로 삼았다. 그녀는 1925년 남자 친구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전차에 들이받혀 척추와 신장, 갈비뼈 들이 손상되는 엄청난 부상을 입었다. 1926년 여전히 병상에 누워 있던 프리다 칼로가 그린 첫 번째 작품 ‘붉은 옷을 입은 자화상’은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이 여실히 드러난다. “내 그림들은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중략)그림이 내 삶을 완성했다. 나는 세 명의 아이를 잃었고 내 끔찍한 삶을 채워줄 다른 것들도 많이 잃었다. 내 그림이 이 모든 것을 대신해주었다. 일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려는 1953년에 쓴 짧은 자기 소개서에서 이렇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기술했다.
국립 예비학교 2000명의 학생 중 최초의 여학생 35명에 포함되었던, 재기 발랄한 신여성이었던 프리다 칼로는 소아마비와 교통사고 탓에 평생 병원을 들락거리며 고통 속에서 지냈다. 그녀는 고통 그 자체였던 자신의 삶을 화폭에 담았다. 20세가 초 혁명으로 혼란기를 겪던 멕시코에서 여성으로 겪었던 또 하나의 현실적 고통도 담겨있다. 그녀는 자신의 이마에 리베라의 초상을 새겨 넣어 두 사람의 끈질긴 운명을 보여준 자화상도 여러 편 남겼다. 그녀의 작품 중에서 특히 유명한 것은 팝가수 마돈나가 구입한 ‘나의 탄생(1932년)’이다. 하얀 침대보를 피로 물들이며 여인이 아기를 낳고 있는 광경을 그린 이 그림은 프리다 칼로 자신의 운명적인 출생과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자신의 괴로움을 동시에 보여주는 듯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서늘한 초상도 잘 알려져 있다. 고흐는 모두 40여 점의 자화상을 남겼는데 초기에는 갈색을 주로 사용한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기법을 사용하다가 말기에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까? 하찮은 사람이나 이상한 사람, 혹은 꼴불견인 사람일까?(중략)만일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라면 내 그림들이 언제나 나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그 이상아고 하찮은 것들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고흐는 1882년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조울증을 앓고 있던 그는 불확실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초상화를 그렸던 것이다.
자화상 속의 그의 눈은 강렬하게 번뜩이고 있으며 초상화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욕망을 담고 있다. 1888년 동거하던 미술가 고갱과 다툰 후 자신의 귓불을 잘라 종이에 싸서 매춘부에게 주었다가 시민들의 청원으로 정신병원에 갇힌 후 그렸던 자화상들은 특히 강렬했다. 귀에 붕대를 감은 자신을 그리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이듬해 그는 서른일곱의 나이에 권총자살을 선택했다.
김태훈 사랑샘터 신경정신과 원장은 미술가들이 자신의 모습을 작품 속에 남기는 것은 나르시시즘과는 큰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렘브란트 등의 미술가들은 매번 모델을 구하는 것이 번거로워 자신을 스스로 모델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마다 자신을 모델로 삼아 빛과 구도의 변화 등을 지속적으로 연습한 것입니다. 자화상은 또한 세원과 함께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예술가의 본능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 현대에 와서 미술가들의 초상을 유화를 벗어나 다채로워졌다. 심지어 영국의 미술가 마크 퀸은 1991년부터 틈틈이 뽑은 피를 얼려 자신의 두상을 만들었다. 5년에 한 번씩 인체 내의 혈액과 같은 양(4리터)으로 만든 그의 ‘셀프’연작을 통해 작가의 얼굴이 늙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팝 아티스트 낸시 랭은 지난 9월 2일에 장은선 갤러리에서 오픈한 ‘캘린더 걸’전을 통해 자신이 직접 모델로 나선 섹시한 작품들을 선보여 인터넷에 회자되기도 됐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어두운 곳에서 할 짓 못할 짓 다 하면서 겉으로는 내숭만 떨 일이 아니다. 욕망이 무슨 죄인가? 욕망을 포장하는 권력이 죄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비키니를 입은 현대미술>을 통해 말한다. 김태훈 원장은 예술과 외설의 차이는 이렇게 예술가의 작가정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 했다. 물론 낸시 랭의 작품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로 싶다는 나르시시즘이 내포되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작품을 보고 재미를 느끼면 된다. 그게 바로 그녀가 원하는 바다.
편집 이 소영 기자
출처 에스콰이어 2009년 10월호
사랑샘터 소아정신과 원장 김태훈



